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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껄인다

밀린 이야기

나는 최대한 날 표현하고 어떠한 사람인지 말하는데, 상대방은 내가 아닌 나를 상상하고, 오해할 때가 있다.

시험이 끝나니 약속이 너무 많다. 난 사람 만나는게 싫다. 내 생각과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만 집중하기도 벅차다. 너무 힘들다. 다만, 나이가 조금 들면서 단순히 놀자는 약속만큼은 피하게 된 것 같다.

그래도, 나는 힘들어도 어느 정도 삭힐 수 있는 사람이다. 최근에는 정말 힘들지만, 어떻게든 될 것 같기도 하다. 다들 힘드니까. 그래도 나에게 연락오는 친구들은 일정 삶의 부분에서 내가 필요한 것이고, 도움이라도 준다면 좋은 것이지. 그렇다고 나도 특별히 삶의 의미를 따지는 시기는 지났으니까.

라지만 결국 내가 누군가를 만나서 위안 받는 걸지도 모른다. 며칠 전에 만난 친구랑 아주 길게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는 내가 몇 년동안 짝사랑한 친구였다. 뭐 그래봤자 군대에서 좋아한 거긴 하지만. 나는 마음 정리가 완전히 됐고, 그 친구는 날 좋아한 적이 없기에, 우리는 그냥 친구였다. 그 친구랑 잘 이야기 하고, 헤어지는데 편지를 썼다길래 받았다. 

뭐 대충 내용은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 것이 기뻐서 그냥 즐거워하기만 했지, 나에게 못된 짓해서 미안하다는 것이다. 일년에 한번 볼까말까 하는데, 왜 이제서야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되고 분통이 터졌다. 자기 마음이 불편해서 그런건가. 이렇게 편지로 주면 마음이 풀리는 건가 반성문이야 이거? 이미 그런거 알고 있었고, 나는 괜찮다는데, 나로 인해서 그 사람이 힘들어했다고 생각하면, 도대체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민폐뿐인 인간이다.

갑자기 딴 소리 하자면, 약간 글이라는 점에서 감정의 해석에 오해가 갈 일이 많은 시대이다. 문자나 톡이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을 장악했고, 얼굴 보는 것, 목소리로 통화하는 거랑은 상당히 의도가 다르게 해석되는 경우도 있다. 글이라는 것이 수용할 때 자신의 관점에 계속 빗대어 투영되기 때문이겠지. 내가 저 친구의 편지 때문에 상당히 짜증났지만, 나도 불과 몇시간 전에 다른 사람을 힘들게 했다. 텍스트란 것이 자신의 감정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랬는지 후회스럽다. 앞으로 진지하거나 감정이 섞인 이야기는 톡이나 문자로는 못할 것 같다.

돌아와서, 그 친구의 글을 몇번씩 읽어보니, 또 어느정도 납득이 되고, 나로 인해 힘들었다기보단 고마운 것이 많다는 글이였다. 오히려 이렇게 정리가 되어서 서로 평생 안보아도 될 것 같았다. 나는 사실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그 친구가 매년 한번이라도 나를 찾았던 것은 계속 마음의 응어리를 풀고 싶어했던 것 같기도 하다.

또 글을 쓰다 보니 느낀건, 사람이 만나는 것이 힘들다고 한 것은 해석과 받아들임에서 오해를 줄이고, 감정과 감정을 마주하는 작업을 베이스로 하기때문에 나에게 정말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놀기 위한 만남은 없으니까 적어도 지금의 나한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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